명동에서도 최고의 명당은 어디인가
명동대성당은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상징이다. 고딕 양식의 건축물은 1898년 지어졌으며,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었다. 지하 묘역에는 구한말 기해박해와 병인박해 때 순교한 9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성당이 있는 명동 언덕은 '명례방'이라 불렸던 곳이다. 조선인 최초로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이승훈(베드로)이 1784년 귀국하여 김범우(토마스) 집에서 정약용(요한), 정약전(안드레아) 등과 함께 명례방공동체를 만들어 공소 예식을 드리던 곳이다. 그 후 김범우는 체포되어 귀양가서 순교했다.
명동성당 첫 공사는 1887년(고종 24년) 시작되었다. 당시 고종께서는 경복궁보다 높은 자리에 훨씬 높은 건물이 올라가는 것에 분노해 공사를 못하게 했다. 그뿐 아니라 역대 왕들의 어진(御眞)을 모신 영희전(永禧殿)과 가까워 영희전의 풍수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면서 공사가 지연되기도 했다. 영희전 터에는 현재 영락교회가 들어섰다.
1980년대에 명동성당은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불렸다. 민주항쟁 당시 시위대들이 진압을 피해 명동성당으로 피신했는데, 김수환 추기경은 “그들을 체포하려면 나와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을 짓밟고 가십시오" 라는 말로 경찰들의 성당 진입을 막았다고 한다.
성당이 자리한 명동은 우리나라 금융의 중심지이고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핫플레이스다. 고지도를 보면 북악산, 인왕산, 남산에서 시작된 물이 광통교에서 합수되어 청계천을 이루는 곳이다. 물이 모이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시장이 서며, 재물이 쌓인다는 말에 그대로 부합되는 곳이다.
그렇다면 명동에서도 최고의 명당은 어디일까?
풍수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궁금한 점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남산에서부터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며 점검해 본다. 남산(270m)은 북한산(836m)부터 시작되어 북악산(342m)과 인왕산(338m)을 거쳐 남대문을 지나 솟구친다. 이 산줄기를 따라 한양의 도성을 세웠다.
남산의 원래 이름은 목멱산이었는데, 한양으로 천도한 이성계가 이곳에 목멱대왕을 모신 국사당(國師堂)을 지어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하늘에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국사당을 인왕산 선바위 밑으로 옮기고 그곳에 조선신궁을 지었다. 자신들의 신사가 가장 높은 곳에 있어야 했던 것이다. 이때 목멱산도 남산으로 지명이 바뀐다.
남산은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으며, 가장 높은 곳은 남산타워가 있는 서쪽 봉우리다. 이곳에 국사당과 일제의 신사가 있었으나 해방 후에 그 자리에 팔각정을 세웠다.
팔각정에서는 산줄기가 두 방향으로 나누어지는데, 한 줄기는 90도로 방향을 바꾸어 북쪽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줄기는 동쪽으로 진행한다. 동쪽 봉우리는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잠두봉이라 불린다. 누에는 뽕잎을 먹기 때문에 지금의 잠실지역에 뽕밭을 조성해 남산의 지기(地氣)를 키우고자 했다.
팔각정에서 불현 듯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지금의 명동으로 이어진다. 산줄기를 용맥이라 하는데, 봉우리의 기운을 전해 주는 탯줄과 같은 역할이다. 그래서 명문고택이나 유서 깊은 사찰은 모두 봉우리에서 이어진 산줄기 끝에 자리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찰로는 해인사, 봉정사, 부석사 등이 그러하며, 하회마을, 양동마을 서백당, 육영수 여사 생가, 홍명희 생가 등도 산줄기 끝에 자리하였다.
남산에서 명동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는 퇴계로에서 몇 차례 크고 작은 봉우리를 만들고 있는데, 이를 기복변화(起伏變化)라 한다. 유기체인 기맥이 자신이 머물고자 하는 곳에 이르면 속도를 조절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명당성당에 이르러 작은 봉우리를 만들면서 남산의 기운을 응집하고 있으니 모든 풍수인들이 염원하는 혈처인 것이다. 다른 말로는 기운이 뭉친 곳이라 하며, 명동에서도 최고의 명당인 것이다.
이곳은 성당 건립 당시에는 사대문 안 모든 곳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우뚝한 곳이었다고 한다. 이는 풍수의 4가지 혈의 형태, 와·겸·유·돌 중 돌혈에 해당된다. 와혈은 제비집 같은 오목한 지형이고, 겸혈은 엄지와 검지손가락 사이 합곡처와 같은 모습이고, 유혈은 여인의 젖가슴 같은 형태이고, 돌혈은 평지에 우뚝 솟아 철모와 같은 지형을 말한다. 돌혈의 대표적인 것은 하회마을과 강회백 묘를 연상하면 된다.
즉, 명동성당은 남산 최고봉에서 이어진 산줄기가 평지에 이르러 우뚝 솟구쳐 돌혈을 이룬 곳인데, 실제로 성당 뒤편을 보면 지대가 낮은 곳을 메워 광장으로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성당은 북서쪽의 북한산 비봉을 바라보고 있으니, 회룡고조 형세가 되었다. 회룡고조란 산줄기가 크게 휘돌아 처음 시작되는 산을 돌아보는 지세로 하늘과 조상의 보살핌으로 큰 인물이 난다는 명당을 말한다.
회룡고조형 명당의 특징은 자애롭고 덕이 많다는 것인데, 이런 장소에 우리나라 가톨릭의 성지가 들어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성당에서는 노숙인들을 위해 식사를 제공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도움과 사랑을 베풀고 있으니 회룡고조형 터의 성격에 그대로 부합된다.
명동성당에서 파워스폿을 만든 산줄기는 YWCA 방면으로 휘어지며 마무리하고 있다.(右旋龍) 이때 큰 혈을 맺으면 남은 기운이 아래까지 퍼지면서 명당의 마을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로 인해 명동지역이 핫플레이스가 된 것이다.
산줄기는 남산의 기운이 뭉친 곳이고 물줄기는 여러 물줄기가 모이는 곳이니 음양의 조화를 이룬 명동이 명당이다. 당신이 지금 구원받고자 하면 명동성당에 들러 기도하라. 우리나라에서 성령의 축복을 받는데 이보다 좋은 명당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