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칼럼

임진강 수계를 활용한 통일수도 입지의 적정성 연구 (파주 적성을 중심으로)

지종학 0 3,326 2018.09.13 12:00
 

임진강 수계를 활용한 통일수도 입지의 적정성 연구

-파주 적성을 중심으로-

지종학

            


요약 : 근자에 들어 남북한 관계가 순풍을 타고 있다. 그에 따라 조심스럽게 통일된 한반도의 수도입지를 어디로 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본 연구는 풍수이론에 의거해 임진강 수계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임진강은 한탄강과 합수된 후 수차례 구비치고 있으며, 특히 적성지역에서는 세 줄기 물이 합수되면서 더욱 역동적인 물길을 보이고 있다. 이 지역의 산줄기는 감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중성산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중성산 정상에 있는 칠중성은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국가 주요기관이 자리하고 신도시가 조성되면 한반도의 국익 최우선이라는 명제 하에 남북한 통합의 상징성. 국토의 균형발전. 대륙과 해양으로의 확장성. 신도시 조성이라는 네 가지 지리적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통일수도로 적합한 곳이다.
주요어 : 통일수도, 임진강, 감악산, 적성, 칠중성, 풍수이론, 삼경제도
 


1. 서론

한민족의 역사를 보면 도읍지는 나라의 흥망성쇠를 크게 좌우하였다. 도읍의 입지가 좋은 곳은 국력을 크게 떨쳤지만, 입지가 불리한 곳에 자리한 경우는 곧 쇠퇴하였다. 외침의 방어에 유리하고 물자의 교역이 수월해야 하며, 기후와 환경이 좋아야 했다. 요즈음 같은 첨단무기가 있는 상황에서는 방어에 유리하다는 것이 불필요할지 모르지만, 방어의 의미는 적의 침입 뿐 아니라 심리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지형지세를 갖춘 장소성을 의미한다. 물자의 교역은 경제력을 의미하고 기후와 환경은 지령인걸의 토대가 된다.
2018년 들어 남북한 정상회담이 열리고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사건 등으로 갈등을 빚고 급기야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등 남북한이 극도로 대립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실감된다.
남북한 해빙분위기에 맞추어 미래 한반도의 통일수도에 관한 논의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이 어떠한 형태로든 통일이 된다면 자국의 수도를 통일수도로 고집하기는 쉽지 않다. 70년간 분단된 상황에서 서울과 평양은 각각 수도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남북한 국민의 물리적 화합을 당장 기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대도시를 활용하기보다는 신도시를 조성하는 것이 유리하다. 즉 통일 수도를 제3의 장소에 두고 일정기간 서울과 평양을 함께 운영하는 삼경제도(三京制度)가 필요하다.
통일수도를 선정함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한반도 국익이 다. 남북한 국민 모두에게 경제적 부를 제공하고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민족의 자존감을 확보하여 부국강병을 도모할 수 있는 곳이 통일수도가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풍수지리 요인이 합당해야 한다. 풍수는 환경결정론적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입지조건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국익 최우선이라는 대명제 하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지리적으로 남북한 통합의 상징성이 있어야 한다. 서울과 평양보다는 제3의 장소가 유리한데, 남북한 분단의 경계지점부터 동질성을 확보하여 점차적으로 확산시키는 방법이 적합하다. 둘째, 한반도의 균형발전이다. 남북한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경제특구를 통일수도 인근에 지정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지역에 개성공단 외에 또 다른 경제특구를 지정해 교역을 확장하는 것이 좋다. 개성공단은 남북한만의 경제특구지만 세계 모든 국가가 참여할 수 있는 대규모 경제특구를 조성해 북한의 경제를 활성화 하는 것이다.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도로와 철도 등의 인프라 확산은 남북한 모두에게 경제적 실익을 기대할 수 있다. 셋째, 통일된 한반도는 인구 8천만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글로벌화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륙과 해양으로의 접근이 용이한 장소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넷째, 기존의 도시는 도시계획에 의해 주요 관공서가 이미 자리하고 있으며, 물리적 이질감이 있어 남북한 주민의 화합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신도시를 조성해 남북한 주민의 왕래가 용이한 곳부터 점차 확산하는 방안이 유리하다.
이상과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은 한반도의 중부권이 통일수도로 적합하다. 그 중에서도 임진강 수계를 활용하면 조운이 편리할 뿐 아니라 남북한 경계지점에 자리하면서 경의선과 경원선 철도를 이용해 중국과 러시아, 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는 기초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임진강에서도 적성 수계를 풍수지리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풍수이론으로 접근하는 이유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도읍을 정하고 주요 관공서를 정할 때 풍수논리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인데, 산과 하천이 많은 한반도 지형에서 풍수지리 조건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통일수도 입지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점은 국가수반의 집무실과 행정부·사법부·입법부가 들어설 자리이다.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에 나오는 국도건설의 원칙 또한 궁궐을 정한 다음 좌묘우사(左廟右社), 전조후시(前朝後市)의 기준을 제시한 것도 국도에서 궁궐의 입지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수반의 집무실과 주요관공서가 안정적인 곳에 자리한 다음 외연을 확장하는 식으로 신도시가 조성되어야 한다.
한편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주고받는 식의 거래로 수도가 정해지는 것은 절대금물이다. 정치적 요인이 개입되면 입지에 대한 평가가 묻혀 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롭게 정해지는 통일수도는 오로지 한반도의 국익을 위해서만 논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어떠한 방식의 통일이든 관계없이 일관되게 유지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최창조는(1989)는 남북한 양 체제 사이의 정치적 의도성이 개입될 경우 최선의 수도 선정은 어렵다고 우려를 표한바 있다. 정치는 일시적이지만 국토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수도 입지가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혹자는 국민적 합의를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경우 남한은 인구수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북한은 전체주의적 사고가 강하기 때문에 감상적 요인과 정치적 요인이 함께 개입될 우려가 있다.
통일수도에 대한 선행연구로 최창조는(1989)는 서울, 개성, 공주(계룡산)를 비교하였을 때 한반도 중앙에 위치한 개성이 적지라고 하였다. 다만 개성은 분지형으로 규국이 넓지 못한 것은 단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1992) 통일수도는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이나 개성과 같은 분지형은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넓게 트인 평야지대가 유리하다고 하였다. 그 대안으로 광해군 대 이의신이 주장한 파주 교하지역이 수도입지로 적합하다고 말한바 있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수지점을 따라 거대한 대상(帶狀) 도시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았다. 17세기에 비록 광해군과 이의신은 천시(天時)를 얻지 못해 이루지 못했으나 현재는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진수(2016)는 조선시대 천도입지로 거론되었던 장단, 교하, 적성지역과 개성을 추가하여 4곳의 입지에 대해 종합적인 평가를 하였다. 그 결과 통일수도는 개성이 고려의 수도로서 상징성이 있고, 남북한 심리적 거부감이 적을 뿐 아니라 개성공단을 통한 경제협력이 진행되는 곳이기 때문에 적합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행정수도로 범위를 한정할 때는 장단 백악지역이 공민왕 때 신궁(新宮)이 있던 곳으로 풍수적 장점이 많기 때문에 유리하다고 하였다. 박승철(2011)은 풍수에서 물의 의미가 큰 만큼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되는 김포, 장단, 파주 세 곳을 아우르는 지역을 활용하여 주요 관공서를 분산 배치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였다. 그 외에 철원은 후삼국시대 궁예가 도읍을 정한 곳이라는 역사성이 있고 넓은 평야지대를 확보하고 있으며, 분단 이후 비무장지대로 남아 있는 청정지역이기 때문에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지역에 대한 반론으로는 개성은 분지형으로 국면이 좁을 뿐 아니라 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교하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된 후 서해로 빠지면서 수구가 넓게 벌어졌다는 취약점이 있으며, 도라산 지역은 산간지역으로 국세가 좁다는 결점이 있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되는 지역 역시 수구가 열려 있어 풍수이론에 배치된다는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이들 지역에 대한 적정성 여부는 좀 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2. 유서 깊은 도시와 빈국 수도의 물길

풍수에서 물은 재화(財貨)를 의미하며 경제력과 경쟁력을 나타낸다. 그러한 관계로 풍수고전 『금낭경』에서는 풍수의 법은 물을 얻는 것이 우선이라 하였고 『설심부』에서는 물은 재물을 관장한다고 하였다. 『인자수지』에서는 오는 물은 크게 굴곡해야 하고 횡으로 흐르는 물은 돌아서 싸안고자 하며, 가는 물은 가기 싫은 듯 서성거려야 한다고 하였다. 즉 물길은 크게 꿈틀거리면서 감싸며 흘러야 하고 직수로 흐르거나 등지고 흐르는 물길은 오히려 불리하게 여긴다. 실제로 런던, 파리, 모스크바, 로마, 베를린, 상해 등 유서 깊은 도시들은 모두 크게 굽이치는 강변에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강 중의 섬은 풍수용어로 라성(羅星)이라 하며, 물 빠지는 것을 단속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고서에서 말하기를 강 중의 섬 하나는 작은 산 만개의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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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은 20세기 초까지 전세계 육지면적의 1/4을 지배하던 대영제국의 수도로서 템즈강이 서에서 동으로 S자로 흐르는데, 마치 긴 뱀이 꿈틀 대듯한 모습이다. 강물이 크게 굽이쳐 흐른다는 것은 물의 유속이 완만하다는 뜻이다. 점 지점에 버킹엄 궁전과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 중요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파리는 센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하였으며, 강 양변에 노트르담성당과 에펠탑, 오르세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개선문 등의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센강은 파리로 들어가기 직전에 마른강(Marne River)과 합류하여 마치 춤을 추듯 크게 굽이치면서 파리시를 관통하는데, 센강 중심에 자리한 생루이섬과 시테섬을 비롯한 여러 섬이 유속을 더욱 완만하게 해 주고 있다.
모스크바는 러시아 연방 수도로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 소비에트공화국 시대에는 세계 공산주의 총본산이었으며, 현재 초일류강대국 미국과 견줄 수 있는 군사 강국의 수도이다. 모스크바강은 굽이치는 정도가 어지러울 정도로 반복되고 있는데, 파리 센강과 흡사한 모습이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는 BC27년∼1453년까지 약 1,500년 동안 로마제국으로 불리는 역사상 최강대국 심장이었으며, 인류의 예술 및 지성사에 커다란 영향을 준 도시이다. 로마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테베레강이 감싸준 동쪽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강 중심의 티베리나 섬이 라성 역할을 하면서 섬 상류에서 크게 발전되었다. 이탈리아인들은 테베레강의 만곡 형태를 캥거루코에 비유한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소개하는 책자에는 슈프레강이 사행(蛇行)하면서 시가지를 동에서 서로 관통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강 중심에는 박물관섬이 있으며, 강이 환포한 지역을 중심으로 번화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상해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이며, 중국 최대 도시이다. 황포강과 오송강이 만나는 지점에 근자에 푸동신시가지가 형성되어 중국의 금융 및 상업 허브로 급부상하였다. 물길을 활용한 도시개발로 성공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황포강이 감싸준 동방명주탑을 중심으로 두개의 물줄기가 합수되고 있다. 황포강은 양쯔강과 만나서 서해바다로 흐른다.
서울은 한강이 크게 태극모양으로 휘감아 흐르고 있으며, 중랑천 탄천 안양천이 합수된다. 그러나 합수된 물이 좀 더 만곡하지 못하고 용산을 지나서는 북동쪽으로 곧게 빠지는 결함을 갖고 있는데, 노들섬·밤섬·선유도가 라성의 역할을 하며 이러한 약점을 보완해 주고 있다. 직강으로 흐르는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부터 한강 하류까지는 23km에 달한다. 서울과 가까운 곳이라는 지리적 이점이 있지만,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따라서 서울의 한강은 이해가 상반되는 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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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고구려 세 번째 수도로서 이 시기에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을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이 궤멸시키면서 동아시아 강국으로 군림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서경으로 불리며 한양 개성과 더불어 3경 중 한곳이었다. 중국 금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를 타파하고 자주 국가를 표방한 승려 묘청에 의해 천도가 논의되기도 하였으나 정치적 반대세력에 의해 실패하였다. 평양의 지세는 보통강과 대동강이 만나는 지점이며, 대동강 한 가운데 있는 양각도는 마치 물고기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이다. 역시 강이 크게 환포한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이상으로 유서 깊은 국내외 도시 8곳의 물길을 살펴보았다. 이들 물길의 공통점은 좌우 만곡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라성 상류에서 도시가 확장되었다. 또 대체로 강물이 감아준 안쪽이 우세하였다. 도심을 관통하는 30km 길이에서 만곡의 회수는 평균 12.6회, 라성은 2.4개 있었다. 서울, 평양, 상해, 바그다드 등의 아시아권은 강폭이 넓은 편이며, 파리, 베를린, 로마 등 유럽권의 강폭은 상대적으로 좁은 편이다. 그러나 유럽권 물줄기는 강폭은 좁지만 만곡횟수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아래 <표 1>을 보면 임진강은 템즈강과 강폭이 비슷하고, 푸동의 황포강과 만곡횟수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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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례와는 반대로 수도입지에서 물줄기 흐름이 불리한 곳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볼 수 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는 작은 강이 모여 큰 강이 되고 큰 강은 다시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뱅골만 바다로 흐른다. 다카에서는 부리강가(Buriganga) 강이 약 11km를 직거수로 흐르지만, 강중에는 물 흐름을 단속할 모래톱 하나 없다. 방글라데시 1인당 국민소득은 2017년 7월 기준 1,330달러로 217개 국가 중 176위이다.
수단의 수도 하르툼은 우간다에서 흐르는 백나일강과 에티오피아에서 흐르는 청나일강의 합수지점에 위치하였으며, 이 물은 하르툼에서 북쪽으로 100km 이상 곧게 흐른다. 강 중에는 몇 개의 섬이 있으나 거대한 물줄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수단 면적은 한반도의 11배로 아프리카대륙에서 가장 넓은 국가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2,140달러에 불과해 세계 217개 국가 중에서 162위이다. 1956년 독립할 때까지 오랜 세월 이집트와 영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미얀마 전 수도 양곤은 Yangon River, Bago River를 비롯한 여러 강줄기가 모여서 인도양으로 빠지는 지점에 위치하였다. 좁은 강폭은 바다로 가면서 점점 넓어지고 수구가 크게 벌어진 모습이다. 미얀마는 1989년 이전에는 버마라고 불렸다. 1948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였으나 군부가 50년 넘게 정권을 장악하면서 심각한 정치 불안과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때는 세계 최고의 쌀 수출국이었지만, 이제는 아프리카 국가에도 뒤처지는 빈국으로 전락했다. 미얀마의 1인당 국민소득은 1,190달러로 전세계 217개 국가 중 178위에 지나지 않는다. 미얀마 군부는 계속되는 정치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는 방편으로 2005년 수도를 양곤에서 중부 산악지방인 핀머나(Pyinmana)로 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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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은 메콩강을 경계로 태국과 경계지역에 자리하였다. 인도  차이나반도 국가들 중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나라여서 강의 수운을 이용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나, 풍수에서 불리하게 여기는 반궁수(反弓水)지점이다. 라오스는 16세기 중엽 이곳에 수도를 정한 이후 태국, 프랑스, 베트남, 중국 등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2,150달러로 217개 국가 중에서 161위이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은 왕궁이 있는 프놈펜 중심지에서 샵강(sap river)과 메콩강이 만나고 다시 두 강이 갈라지는 지점에 위치하였다. 두강은 베트남을 지나 남지나해까지 이어지는데, 합수(合水) 후 분수(分水)는 풍수논리로 보면 불길한 형태가 된다. 물길의 갈라짐은 국론과 국부의 분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의 대학살이 연상되는데, 찬란한 문명과 비인도적 반문명이 상존한다. 캄보디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1,140달러로 아시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 중 하나이다. 그나마 앙코르와트에 대한 관광 수입으로 국가재원을 조달하지만 그마저도 베트남의 내정간섭으로 더욱 상황이 어렵다. 전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밀림은 오랜 내전의 영향으로 곳곳에 지뢰가 묻혀 있어 통행이 쉽지 않으며, 밀림 속 울창한 나무에 대한 벌목권 조차 프랑스와 일본에 있어 나무 하나도 마음대로 베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는 나일강 물길이 뿔뿔이 흩어지는 꼭짓점에 위치하였다. 그 물이 나일강 삼각주를 비옥하게 하였는지 모르지만, 한 나라 수도의 물길이 그러하다면 국가 경쟁력과 경제력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집트는 인류 최고의 문명이 발생한 고대국가로서 수많은 문화유적과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3,460달러로 217개 국가 중 145위에 불과하다. 참고로 고대 이집트 수도는 지중해 연안의 멤피스와 나일강 중류의 룩소였다.
이상 물길이 불리한 도시의 사례를 보았는데, 대체로 물줄기가 곧고 길게 빠지는 형태가 많았으며, 물줄기가 두 줄기 이상으로 분산되기도 하였다. 또 강중에는 섬(羅星)이 없어 물 흐름을 단속하지 못하였다. 유서 깊은 도시의 물길과 가장 큰 차이점은 만곡횟수가 크게 적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점은 통일수도를 정하는데 깊이 고려해야 할 요인이다.

3. 감악산과 임진강의 배산임수

위에서 통일된 한반도의 수도입지는 국익 최우선이라는 명제 하에 4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이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 남북한 통합의 상징성. 둘째, 국토의 균형발전. 셋째, 대륙과 해양으로의 확장성. 넷째, 신도시 건설을 꼽았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수반이 업무를 보는 집무실과 통일정부의 핵심부서가 입지할 수 있는 곳을 찾고 다음으로는 신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가용토지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곳을 찾기 위해서는 산줄기 체계와 물줄기 흐름 등 풍수지리적 요인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선점(鐥岾)으로의 천도 논의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개경에서 계룡산 신도안으로 천도를 하려고 10개월간 토목공사를 한다. 그러나 당시 경기도관찰사 하륜의 풍수이론을 앞세운 상소로 신도 건설은 취소된다. 하륜은 대안으로 지금의 신촌일대 무악산 아래가 도읍지로 적합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번에는 서운관원 유한우, 이양달이 반대하여 그마저도 무산된다. 이 시기에 서운관원 이양달은 선점(鐥岾)을 도읍지로 천거한다. 

태조3년(1394) 7월 2일 : 서운관원이 와서 도읍될 만한 곳을 아뢰었다. ‘불일사(佛日寺)가 제일이고 선고개(鐥岾)가 다음은 됩니다.’
태조3년(1394) 7월 4일 : 도평의사사에서 선고개(鐥岾)에 가서 천도할 땅을 보니 그곳이 좋지 못했다. 이에 우복야 남은(南誾)은 이양달을 꾸짖었다. ‘너희들이 지리의 술법을 안다는 것으로써 여러 번 맞지 않은 곳을 도읍할 만하다고 하여 상총(上聰)을 번거롭게 하니 마땅히 호되게 징계하여 뒷날을 경계해야겠다.’

불일사는 고려 광종 때(951년) 모후 순명신성왕후를 기리기 위해 개성시 판문군 선적리 보봉산에 지은 사찰인데,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파주와 이웃한 거리지만 개경과 근거리에 있어 개경을 벗어나려는 태조의 천도계획에는 적합하지 않게 된다. 선고개는 어디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불일사와 함께 거론한 것으로 보아 인근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고려사』 공민왕 22년(1373년) 10월, 육일 간 기록을 보면 선고개에 대한 일말의 단서가 있다. 

乙亥日. 찬성사(贊成事) 최영(崔瑩)을 육도도순찰사(六道都巡察使)로 임명해 장수와 수령들의 폐출 및 승진, 군호(軍戶)의 편성, 전함의 건조를 책임지게 하는 한편 죄를 지은 자에 대해서는 직접 처단하도록 했다. 왕이 친히 정릉(正陵 : 노국공주릉)에 제사를 지낸 후 술자리를 마련해 풍악을 울리게 했으며 그날 밤에는 능 부근에서 숙박했다. 이때 백관들이 군복차림으로 호종하고 자제위(子弟衛)들은 모두 붉은 옷에 검은 석의(裼衣)를 걸치고 말을 달려 길을 인도했다.
丙子日. 왕이 서강성(西江城)에 유숙했다.
丁丑日. 왕이 새로 건조한 전함을 살펴보고 화전(火箭)과 화통(火筒)을 시험해본 후 밤에는 마장(馬場)에 유숙했다.
戊寅日. 왕이 선점(鐥岾)에 유숙했다.
己卯日. 왕이 동강성(東江城)에 행차했다가 증산(甑山)에서 유숙했다.
庚辰日. 왕이 천수사로 가서 충숙왕의 영정을 참배한 후 궁궐로 돌아왔다.

공민왕은 첫날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노국공주릉 순행을 시작으로 넷째날은 선고개에서 머물고 다섯째날은 동강성 증산에서 유숙한다. 여섯째날은 천수사에 들렀다가 환궁한다. 위 기록 중 둘째날 서강성과 셋째날 마장은 고증할 수 없다. 그러나 다섯째날 행차한 동강성은 고사신서(攷事新書)에 장단 동강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장단지역이 유력하다. 천수사는 개경의 동쪽(현재 개성시 장풍군)에 있던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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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의 이러한 동선으로 보아 선고개는 개풍군과 장풍군 사이로 짐작되는데, 현재의 지도에 선고개는 감악산에서 북서쪽으로 2km 떨어진 적성면 설마리 산23 지명이며, 파주시 적성면 객현리 일대가 선고개길로 남아 있다. 선고개 인근 구읍리에는 조선시대 읍치와 향교 등이 있던 곳이고 칠중성은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선고개는 현재의 파주시 적성면 일대가 유력하다.
이렇듯 선고개는 조선 초에 천도 입지로 거론된 적이 있다. 비록 선택되지는 못했지만 당시 서운관원으로 활동했던 이양달은 높이 평가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후 이양달은 하륜의 무악산 터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견지했으나 태조3년(1394) 8월 13일 한양으로의 천도에 윤신달 등과 함께 찬성하였다. 이양달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정할 때 참여했고, 태종의 헌릉을 소점했으며, 세종의 장인 심온이 죽자 왕명으로 묘를 지금의 용인에 정해주었다. 세종때에는 특히 최양선과 경복궁 정맥 논쟁이 심했는데, 그때마다 세종은 이양달의 의견을 따랐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이양달은 서운관원(후일 관상감) 신분으로 조선 건국당시부터 태종과 세종 때까지 왕실로부터 최고의 예우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이 80에 이르러서는 서운관판사 벼슬을 제수 받는데, 전문풍수가로서는 최고의 벼슬에 오른 경우다. 

 

2) 감악산과 중성산 칠중성

적성은 삼국시대에는 백제 영토였으나 장수왕 무렵 고구려 영토가 되면서 칠중현이 되었다. 통일신라 때는 칠성현으로 개칭하고 고려 때 다시 적성현으로 바뀌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온조18년(AD 1년) 말갈이 침입하자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칠중하(七重河)에서 적을 대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칠중하는 임진강의 옛 지명이다. 칠중이란 일곱 차례 거듭된다는 의미로 임진강이 수차례 만곡하는 형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칠중현과 칠성현 등은 모두 칠중하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적성현은 현재의 파주시 적성면, 양주군 남면, 연천군 백학면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읍치는 적성면 구읍리에 있었다. 읍치 그림은 여러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형태로 그려져 있어 풍수적 관념이 강하게 투영되고 있다. 지도 위쪽에 보이는 감악산 제단은 고려시대에는 조정에서 주관하여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산꼭대기에는 신령스런 용지(龍池)가 있어 아무리 가물거나 장마가 져도 물이 줄거나 불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임진강 본류가 고지도 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데, 이 지역에서는 신진강, 두지강으로 불렸다. 고지도에는 적성읍 구읍리 앞에서 두 개의 하천이 합수되는 것이 정확하게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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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악산(紺嶽山, 675m)이라는 이름은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한다. 이후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대부분의 지리서와 읍지에 등장한다. 감악산은 예로부터 경기오악의 하나로 숭배되었고 인근 주민들은 감악산을 매우 신령스러운 산으로 인식해 왔다. 감악산 정상에 있는 연대 미상의 비는 명문이 모두 닳아 없어져 고증할 수 없지만, 일설에는 당나라 장수 설인귀의 공적을 기리는 사적비라 하고, 광개토대왕 비라는 말도 있으며, 진흥왕순수비라는 설도 있다. 어느 것이 되었든 역사적으로 감악산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산경표 상의 산줄기를 보면 한북정맥 양주인근에서 파생된 감악지맥은 약 20km를 북진하여 감악산을 솟구친 뒤 임진강과 한탄강이 합수하는 전곡읍 마포리에서 멈춘다. 감악산은 또 한줄기를 뻗어 구읍리에서 175m 봉우리를 형성하는데, 그 형태가 마치 솥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 이 봉우리는 감악산과 혈처를 이어주는 현무정 역할이다. 현무정에서 한 줄기는 중성산(148m)으로 이어져 칠중성이 자리하였고 또 한 줄기는 구읍리로 이어진다. 따라서 적성면 구읍리 일대는 감악산이 주산이고 마차산이 백호이며, 국사봉이 청룡이 된다. 고지도에는 중성산 아래 구읍리에 읍치와 향교 등이 표기되어 있어 인근에서 가장 중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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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산 정상에 있는 칠중성(사적 제437호)은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영토의 주인이 백제-고구려-신라로 바뀌는 격전지였다. 신라 문무왕때는 칠중성에서 당나라와 전투를 벌인다. 나당동맹(648년)을 맺은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자 당나라는 동맹의 대가로 한강이북의 땅을 차지하려 하였고 신라를 속국으로 여겼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과 힘을 합쳐서 나당전쟁(670-676)을 벌인다. 그리하여 칠중성과 그 인근에서 18차례 전투가 벌어진다. 676년 당나라가 대패하여 후퇴하자 신라는 평양과 원산을 회복하여 비로소 통일신라의 국경을 완성한다. 따라서 칠중성은 역사적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칠중성은 중성산 정상부에 둘레가 603m, 면적이 26,924㎡(8,144坪)에 달한다. 칠중성은 사상혈(四象穴)로 구분하면 돌혈에 해당되며, 전후좌우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이다. 칠중성에서는 맑은 날 북쪽의 개성 송악산이 보이기도 한다.
현무정에서 구읍리까지는 3줄기 용맥을 형성하였는데, 산이 끝나는 지점에서 각각 양기(陽基) 터를 이루었다. 이들 지점은 용맥이 잘 이어졌고 좌우에는 청룡·백호가 감싸고 있으며, 임진강이 근거리에서 환포해 주고 있다. 따라서 구읍리 지역은 풍수에서 요구하는 용·혈·사·수 조건을 충족하면서 주요 관공서 입지로 적합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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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https://blog.naver.com/domi2014/220371873484



이상 보았듯이 감악산 한 줄기는 중성산에서 돌혈을 이루었고, 적성면 구읍리에서도 곳곳에 양질의 터를 형성하면서 통일된 한반도의 핵심부처가 자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중성산 칠중성에 국가수반의 집무실이 자리하면 사방을 조망할 수 있으며, 주좌향은 북향이 된다. 그러나 사방이 낮은 지형이라 햇빛을 받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북향을 할 경우 탁 트인 조망이 뛰어나고 대륙으로의 진출을 표방하여 북방정책을 펼치기에 적합한 곳이다.

3) 임진강 적성 수계

임진강은 한강의 제1지류로 북한 강원도 두류산에서 발원한다. 길이는 272km이며, 전체길이 2/3가 북한지역을 흐른다. 임진강 물줄기는 한탄강과 합수되는 전곡부터 김포 연안까지 약 60km를 크게 굽이치며 흐르며, 한탄강과 합수되는 전곡리에서는 20만 년 전 구석기시대 대규모 유적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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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은 앞에서 보았던 유서 깊은 도시의 물줄기와 동일하게 중심권역 30km로 한정하면 만곡횟수 8회, 라성 하나이다. 강폭은 250m로 런던 템즈강(270m)과 흡사하고, 만곡 횟수와 강 건너편에서 합수되는 물길의 형태는 상해 푸동과 유사하다.
임진강 272km 중에서 초평도는 유일한 섬이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강중의 섬은 라성이라 하여 물 빠짐을 단속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라성 상류에 정혈처가 있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임진강 수계에서는 초평도 상류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임진강 물길을 초평도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전곡에서 한탄강과 합류하여 수량을 늘린 뒤 적성에서 크게 굽이치고 있다. 그리고 고랑포를 지나서는 10km를 직수로 흐르다가 초평도에 가로막힌다.
적성면 주월리를 기준하면 사미천과 석장천이 앞에서 흘러와 합수되고, 장남면에서는 설마천이 합수된다. 한편 터의 앞에서부터 흘러오는 물을 조수(朝水)라 하는데, 주월리에서는 사미천과 석장천이 조수이고, 장남면에서는 설마천이 조수가 된다. 풍수고전에서는 이러한 조수에 대해 특래수(特來水)라 하여 경제력과 경쟁력 제고에 가장 적합한 물길로 여긴다. 이러한 물줄기로 보아 임진강 수계는 파주시 적성면과 연천군 장남면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임진강변에는 적벽으로 불리는 20m 높이의 주상절리가 있어 큰 비가 와도 범람의 위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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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임진강 적성 수계는 풍수에서 요구하는 최적의 물길일 뿐 아니라 남과 북을 번갈아가며 아우르는 모습으로 남북통합에 상징적인 물길이 된다. 적성면 주월리를 중심으로 신도시를 건설하면 북향이지만, 연천군 학곡리, 노곡리와 장남면 원당리 일대의 넓은 들을 활용하면 남향으로 입지할 수 있다. 적성면 장좌리 일대의 낮은 구릉을 개발하면 가용 토지를 더욱 확보할 수 있으며, 파주시 장단면 지역도 물길이 뛰어나다. 장단면은 임진강이 환포해주고 강 건너편에서는 문산천이 합수되는 형태다.
참고로 라성 상류에 도시가 입지한 사례는 로마, 파리, 베를린, 모스크바, 평양, 서울 등의 도시가 있다. 이들 도시들은 섬 상류에서 발전하기 시작하여 점차 지역을 확대하였다. 이들 도시와 같이 초평도에는 생태환경 공원을 조성하거나 혹은 남북통합의 상징적인 박물관이나 기념관이 자리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4) 조강(祖江) 수계

조강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된 뒤 강화만으로 흐르는 강으로 김포시 월곶면에 있는 작은 섬 유도를 지나면 서해바다가 된다. 현재는 남북이 조강을 경계로 마주하고 있어 물길을 활용할 수 없지만, 통일되면 서해바다에서부터 한강과 임진강을  선박이 왕래할 수 있다.
조강에는 임진북예성남정맥, 한북정맥, 한남정맥이 모이고, 사천강, 임진강, 한강이 합수되는 지점이다. 풍수의 요체가 산과 물이 모이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재화가 쌓인다는 논리이므로 통일수도 후보지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강은 개풍군에서 일시적으로 환포하지만, 강화도까지 16km가 직수로 빠지고 강폭이 2km에 달해 수구가 넓게 벌어진 상태다. 이처럼 조강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수도 입지로는 무리가 있다. 통일된 한반도는 여러 변수로 인해 모험보다는 안정적인 성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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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과 같이 조강지역은 산과 강이 모이는 지점이라는 특성을 살려 통일수도 배후도시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먼저 개풍군 지현리는 작은 하천을 중심으로 넓은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어서 경제특구를 조성하기에 적합하다. 개풍군 황강리 지역 또한 넓은 평야를 형성하였고, 작은 하천의 굽이침 또한 유서 깊은 도시의 물길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만곡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제특구가 입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들 지역은 기존의 개성공단과 가깝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단 이 지역은 조강과 연접해 있기 때문에 강바람에 노출될 수 있다. 그것을 방비하기 위해서는 강변에 방풍림을 심어 비보할 필요가 있다. 
조강 중심에는 유도가 있으나 강폭은 크고 유도는 작기 때문에 라성 역할로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유도에 김포와 개풍군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으면 남북한 교류가 쉬울 뿐 아니라 인위적인 교량은 어느 정도 수구막이 역할을 할 수 있다.

 

5) 적성지역 인프라

적성은 남북한 경계지점으로 개성과는 30km 떨어져 있고 서울까지는 45km 거리이다. 개성에서는 판문점과 문산을 거치는 1번 국도가 있고, 적성에서 서울까지는 자유로와 3번 국도를 이용할 수 있다. 개성과 서울은 적성으로부터 1시간 내외 거리이다.
철도는 적성에서 동쪽으로 13km 지점에 경원선 한탄강역이 있고 서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는 경의선 도라선역이 있다. 경원선과 경의선을 이용하면 남북한 어느 곳이든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으며, 시베리아 철도(TSR), 만주횡단철도(TMR), 몽골횡단철도(TMGR),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계해 러시아와 중국대륙을 거쳐 유럽으로의 진출이 용이하다. 구체적으로 경의선은 부산-서울-개성-평양-신의주를 거쳐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되고, 경원선은 부산-서울-금강산-원산-나진·선봉-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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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종단철도를 러시아와 중국 철도로 연장하면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면에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올릴 수 있다. 남북한 교역 확대, 물류비용의 개선, 천연자원의 안정적 확보, 수출입선 다변화, 교역 확대 등 정치적·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물류중심지로 부상할 가능성이 확대된다. 교통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선박을 이용하여 유럽으로 물류를 수송할 경우 약 30일 소요되지만, 철도를 이용하면 절반인 15일 걸린다고 한다. 이 경우 일본은 한반도종단철도(TKR)를 활용하면 중국, 러시아, 유럽과의 수출입이 훨씬 수월하게 된다. 또 철도여행을 통한 관광산업이 크게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한반도종단철도는 새로운 실크로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상 보았듯이 적성은 기본적인 도로와 철도망이 이미 확보되어 있고, 수운을 통해 선박까지 운행된다면 교통 인프라는 최적인 곳이다.

 


4. 결론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임진강은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갈등과 분단의 상징처럼 되었다. 하지만 음양의 원리로 보면 영원한 것은 없듯이 이제 임진강을 사이에 둔 갈등과 분단을 해소하고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바뀌어야 한다.
풍수에서 물은 경제력과 경쟁력을 의미한다. 이때 물길은 만곡이 많아야 하며 유속이 완만해야 한다. 반대로 물길이 직수로 흐르면 유속이 빠를 뿐 아니라 풍속도 빠르게 되는데, 이러한 곳은 장풍득수를 근간으로 하는 풍수이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실제로 세계의 유서 깊은 도시들은 만곡이 많은 강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빈국의 도시들은 물길의 형태가 직수로 흐르거나 수구가 열린 곳이 많았다.
한반도의 중앙을 흐르는 임진강은 여러 차례 만곡되면서 유속이 완만할 뿐 아니라 수량도 풍부해서 풍수에서 요구하는 물길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그 중에서도 임진강의 유일한 섬 초평도를 주목했다. 풍수에서 라성은 관문의 역할이기 때문에 상류에 길지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임진강은 한탄강과 합수된 후 수량이 증가하면서 굽이침이 더욱 심해지는데, 산과 강을 유기체로 간주하는 풍수의 인식체계로 보면 임진강은 매우 역동적인 모습이다. 그 중에서도 적성지역 물길은 3개의 물길이 합수되면서 마치 상해 푸동을 감싸고 흐르는 황포강과 흡사한 모습이다. 더욱이 임진강 적성수계에서는 사미천과 석장천이 앞에서부터 들어오는 朝水가 되어 풍수에서 속발(速發)한다는 최관지(催官地)가 된다.
적성지역 산줄기는 감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중성산까지 많은 봉우리를 형성하면서 박환(剝換)되었다. 산줄기 흐름이 혈을 맺는데 요구되는 부모-태-식-잉-육의 과정을 거치면서 중성산 정상에 북향으로 돌혈을 이루었다. 돌혈처 칠중성에서는 사방을 모두 조망할 수 있으며, 특히 북쪽으로는 넓은 평야가 펼쳐지면서 개성의 송악산이 바라보인다. 이렇듯 탁월한 조망으로 인해 칠중성은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곳에 통일된 한반도의 국가수반 집무실이 북향으로 자리하면 광대한 대륙으로의 진출과 북방정책을 표방할 수 있다. 중성산 기슭에는 칠중성 외에도 구읍리 인근에 주요 기관이 들어설만한 장소가 있으므로 이를 기반으로 신도시를 조성하면 통일수도 입지로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진강 수계는 적성 외에도 연천군 학곡리와 노곡리, 장남면 원당리 일대에서 남향으로 넓은 평야를 형성하였다. 이들 지역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리면서 신도시가 들어서기에 알맞은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과 강이 모이는 조강 지역은 배후도시로 경제특구를 조성하는 것이 좋다. 개풍군 지현리와 황강리 일대는 작은 하천의 물길이 뛰어날 뿐 아니라 넓은 들을 확보하고 있어 경제활동에 유리한 지형이기 때문이다. 단 이 지역은 조강에서 부는 강바람을 차호할 수 있는 방풍림 등의 비보가 수반될 필요가 있다. 70년간 보존된 초평도는 생태환경공원으로 조성하거나 남북통합의 상징이 자리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본 연구의 서두에서는 통일된 한반도의 수도입지는 국익 최우선이라는 명제 하에 남북한 통합의 상징성. 국토의 균형발전. 대륙과 해양으로의 확장성. 신도시 조성이라는 네 가지를 충족시키는 곳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서울과 평양이 아닌 제3의 장소에 통일수도가 입지하면서 삼경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 바 있다. 단 정치적 이해관계와 감상적 배려에 의해 입지가 정해지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살펴본 바에 의하면 임진강 적성 수계는 여러 물이 합수되면서 역동적인 물길을 갖추고 있어 국익 제고에 최상의 물길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갈등과 대립의 상징이었던 임진강은 남북을 아우르는 물길로 남북통합의 상징성이 있다. 이 지역은 한반도의 중심에 있어 국토의 균형발전을 꾀하기 적합한 곳으로 경의선과 경원선을 복원하면 대륙으로의 진출이 용이하고 임진강 수계를 활용하면 해양으로의 접근도 수월하다. 그 중에서도 적성 수계는 산줄기와 물줄기가 어우러진 천혜의 혈처를 이루고 있어 국가수반을 비롯한 주요 기관이 입지할 공간이 있으며, 신도시를 수용할만한 하중을 갖춘 곳으로 평가된다. 특히 물줄기가 상해 푸동과 같은 뛰어난 형태를 갖추고 있어 남북한의 경제력 차이를 조속히 해소할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통일된 한반도의 수도입지는 임진강 적성 수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2018년 8월 18일 ​"평화시대 통일수도 입지에 관한 풍수지리 심포지엄" 발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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