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칼럼

의성 허준 묘와 진맥법

최고관리자 0 1,470 2016.12.26 14:05

이규원 객원전문기자의 대한민국 통맥풍수]<47>   의성 허준 묘와 진맥법
2007년 10월 12일 (금) 08:59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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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醫聖) 허준의 명성이 중국에까지 떨쳐 황제가 파견한 칙사와 함께 명나라 조정에 갈 때 일이다. 험준한 백두산 협곡을 지나가던 중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허준을 업고 굴속으로 들어갔다. 굴 안에는 비녀가 목에 걸린 호랑이가 입을 벌린 채 신음하고 있었다. 얼른 치료해 주고 나니 덩치 큰 호랑이는 숫돌과 침을 선물로 내주며 혼비백산한 명나라 칙사 앞에 다시 업어다 놓았다. 산짐승도 알아주었다는 놀라운 신통의술과 호환(虎患)을 경계하는 허준의 여러 설화 중 하나다. 신이 내린 의술로 조선 중기를 살다간 구암(龜巖) 허준(許浚·1539∼1615) 묘를 찾아 가면서 수년 전 TV사극 ‘허준’에서 중년 남성들을 사로잡았던 ‘예진아씨’가 자꾸 어른거렸다. 허구로 내세운 가상인물인 줄 알면서도 아리따운 자태에 수줍음 많던 그 ‘예진아씨’가 동의보감을 저술한 구암 묘 근처에 묻혀 있는 건 아닌가 하고. 그러나 경기도 파주군 진동면 하포리 산 129번지에 있는 허준 묘역에 당도해서는 애틋했던 마음도 잠시, 이내 긴장으로 오그라들고 만다. 임진강 건너 북녘 땅이 금방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민간인 통제구역이기 때문이다. 30명 이상의 내방객이 사전 신청을 해야 군(軍) 당국의 안내로 지정된 날짜에 참배할 수 있는 곳이다.  송암 강환웅 박사(한경대 교수)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단법인 대한풍수지리학회 40여명의 회원들도 초행길이다. 휴전 이후 50여년 만에 일반인 접근이 가능해진 것이다. 파주시에서는 이 지역을 안보관광코스로 포함시켜 제3땅굴 견학도 겸하게 하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해 오랜 휴식년에 든 ‘민통선’이어서인지 주변 산하의 풍광과 물길이 해맑고 청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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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 허씨 시조 탄생지로 알려진 ‘허가바위’. 허준박물관 근처에 있으며 서울특별시기념물 제11호다.
 
 구암의 77년 생애를 반추하노라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교훈되는 바 크다. 그는 당시 사회의 태산 같은 신분 장애와 역경을 뛰어넘어 특출한 자신만의 기능계발로 당대 일가를 이룬 자수성가의 표상이다. 서얼(庶孼) 간 차별이 엄격해 중서급(中庶級)에 해당하는 의업(醫業)을 택했지만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지 않고 피나는 노력 끝에 남이 넘볼 수 없는 자리까지 올랐다. 경기도 양천현 파릉리(현 서울시 강서구)에서 태어난 허준은 할아버지가 경상우수사였고 아버지도 용천부사를 지낸 무관벼슬 가문이었다. 어머니가 천첩출신이란 이유로 서자였던 그가 받은 사회적 부당대우는 분노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29세 의과 급제 후 42세 때 어의가 되면서 왕자 광해군의 오랜 고질병이었던 두창을 완치시켰다. 선조대왕이 크게 기뻐하여 당상관 벼슬을 제수하려 했으나 출신성분이 천박하다는 대신들의 극력반대로 무산되는 뼈아픔을 겪었다. 1992년 6월 5일 경기도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된 허준 묘가 확인되기까지에는 고난에 찬 그의 생애 못지않은 곡절이 숨겨져 있다. 당시 한의학계서는 ‘동양의 의성’으로 추앙받는 그의 묘를 찾지 못해 애태우고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불가능할 것 같던 실전(失傳) 묘 찾기가 사소한 단서 하나로 단숨에 해결될 줄이야! 재미 고문헌연구가 이양재씨 등의 집요한 추적으로 양천 허씨 족보에서 ‘下浦里嚴洞巽坐雙墳(하포리엄동손좌쌍분)’이란 기록을 찾아낸 것이다. 군부대 협조 하에 1991년 9월 30일 현장에서 두 동강난 비석을 발굴해 냈다. 마모된 비문 내용 중에서 ‘陽平○○聖功臣○浚’이란 글자가 판독되었다. 구암은 陽平公(양평공) 허씨로 임진왜란 때 선조대왕을 의주 피란지까지 호종해 扈聖功臣(호성공신)이란 칭호를 받은 許浚(허준)이었다. 절묘하게도 그의 묘임을 입증하는 데 필요한 글자만 남아 있었다. 부인 안동 김씨와 생모의 묘도 함께 발견돼 당시 한의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번 간산 길에서 특징은 “강환웅 교수는 회원 모두 묘역 주변을 살피게 한 후 자기 판단관점을 발표하는 현장학습으로 이끌었다.”
 입수룡맥을 재러 능선에 오르려니 ‘분단의 철조망’이다. 저마다의 간산 결과는 그야말로 난상토론이었다. ▲좌향의 계측 결과는 사좌(동→남으로 60도)해향(서→북으로 60도)이니 서북향. 족보에 기록된 손좌(동→남으로 45도)건향(서→북으로 45도)과는 15도 차이가 난다. 복원할 때 봉분 좌향을 잘못 놓았다는 지적이다. ▲내룡맥이 뚜렷지 않은 데다 경사지를 절개하며 용사한 봉분 탓에 당판이 달아났다는 판단도 제기됐다. 강 박사의 결론에 시선이 모아졌다.  “늘 강조하는 사안이지만 물길 들어오는 방향이나 나가는 방향에 지나치게 얽매여선 안 됩니다. 평원지대서나 원용하는 수법(水法)입니다. 입수나 파수는 서 있는 위치나 방향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며 유동적일 수밖에 없어요. 경우에 따라서는 측정하는 사람의 신장 높낮이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그러므로 풍수공부의 깊은 경지에 들려면 역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바탕에 깔고 지질학에 관한 구체적 연구와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변방 학문이 고루 응축돼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땅속에 묻힌 유해는 지기와의 수수(授受)작용을 통해 후손 간 동기감응으로 이어진다는 논리가 풍수지리학의 요체인데 굳이 산 물형이나 물길 모양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다. 그 땅기운은 우리 국토 지하의 주종을 이루는 화강암 지반에 응결되는데 이곳은 화강암 지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당판을 이어주는 입수룡맥(봉분 위를 이어주는 두툼한 산등성이)이 갈지(之)자의 생룡으로 내려와 망자가 안식하기에 손색없는 길지혈처라는 판정도 제기됐다.“구암 선생은 하늘이 낸 신의(神醫)이자 충신이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강토 전역이 초토화되고 선조대왕마저 의주까지 몽진하자 많은 대신들은 조선왕조가 망할 줄 알고 도망갔지만 그는 끝까지 따랐습니다. 그 호종의 공로로 정일품인 보국승록대부를 제수하려 하자 서자에게 지나친 벼슬이라며 조정에서 또다시 반대했어요. 결국 사후에 추증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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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 앞에 새로 건립된 재실. 군 당국의 안내로 일반인 출입이 허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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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허준박물관. 대한한의사협회와 담 하나 사이로 국내 한방의학계의 본거지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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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환웅 박사(맨 오른쪽)가 간산 회원들에게 구암 묘의 지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자 광해군은 종래 관례에 따라 수의(首醫)인 구암에게 형식적 책임을 물어 유배시켰으나 곧 방면했다. 그 후로는 남은 여생을 당대 의학지식을 거의 망라한 임상의학서 동의보감 편술에 전념했다. 이 책은 중국과 일본에까지 널리 홍포돼 ‘천하의 보(寶)’라는 평을 들으며 의학정서로 인정받았다.
  진맥법(診脈法)에 달통했던 허준은 모든 질병의 근원을 육장육부 간 기능 부조화에서 원인을 찾고 진맥을 통해 그 병명을 규명해 냈다. 인간 몸의 맥은 손목에서 뛰는 촌구맥(寸口脈)과 귀밑 목 부위에서 감지할 수 있는 부돌맥(扶突脈·또는 인영맥이라고도 함)으로 나뉘는데 상·하 두 맥의 크기를 측정해 병의 소재를 알아내는 것이 중국 비술로 전해오는 자오유주(子午流注) 진맥과 침법이다. 필자는 7년 전 대만 체류 당시 그곳 천지정교(天地正敎) 간부한테 면관술(面觀術·얼굴에 나타난 반점과 주름을 통해 질병 유무를 알아내는 법)과 함께 전수받았다.  예부터 진맥법은 한의학의 마지막 단계로 금욕을 통한 정성 끝에 입문한다고 했다. 맥상(脈狀)을 통해 남의 육장(간 심장 심포 비장 폐 신장) 육부(담 소장 삼초 위장 대장 방광)를 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오유주 진맥법은 촌구맥과 부돌맥의 평맥(平脈·맑고 고르게 뛰는 맥)과 조맥(躁脈·탁하고 불규칙하게 뛰는 맥)을 정교하게 구분해 다음의 등식에 대입만 하면 웬만한 초기질병은 자가 진단해 낼 수 있는 비법이다. 이때 촌구맥과 부돌맥이 평맥으로 균일하면 아주 건강한 상태다. 
  ①▲촌구맥이 평맥으로 부돌맥보다 1배 크면 간장병 ▲촌구맥이 조맥으로 부돌맥보다 1배 크면 심포(마음)병 ②▲촌구맥이 평맥으로 부돌맥보다 2배 크면 신장병 ▲촌구맥이 조맥으로 부돌맥보다 2배 크면 심장병 ③▲촌구맥이 평맥으로 부돌맥보다 3배 크면 비장(지라)병 ▲촌구맥이 조맥으로 부돌맥보다 3배 크면 폐병이다.반대로 ①▲부돌맥이 평맥으로 촌구맥보다 1배 크면 담(쓸개)병 ▲부돌맥이 조맥으로 촌구맥보다 1배 크면 삼초(신경)병 ②▲부돌맥이 평맥으로 촌구맥보다 2배 크면 방광병 ▲부돌맥이 조맥으로 촌구맥보다 2배 크면 소장병 ③▲부돌맥이 평맥으로 촌구맥보다 3배 크면 위장병 ▲부돌맥이 조맥으로 촌구맥보다 3배 크면 대장에 병이 있다는 징후다.
 묘역 아래에는 2003년 7월 건립한 재실(제사용구를 보관하는 곳)이 고풍스럽게 들어서 있다. 맥문동 작약 등 한약재가 심어진 순전 앞 화단을 내려오며 살펴보니 좌청룡·우백호가 서로 배신해 수구가 열려 있다. 국세는 환포돼 있으나 따라주는 산이 없어 외롭고 무력하다. 당판의 생기가 설기(泄氣) 안 되도록 선익(蟬翼)이 감싸줘야 하는데 호신사가 없다. 땅속의 지기를 생성케 해주는 화강암이 없으면 사신사의 작국(作局)이 저렇게 되나 보다.허준이 출생하고 동의보감을 집필한 뒤 세상을 떠난 곳으로 알려진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는 구암 허준공원이 있다. 1993년 세워진 허준박물관 바로 옆에 대한한의사협회가 함께 있어 국내 한방의학 본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이곳에는 양천 허씨 허선문(許宣文) 시조가 태어났다는 ‘허가(許哥)바위’(서울시기념물 제11호)가 있어 허씨 문중에서는 성지로 여기고 있다. 강서구에서는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제9회 ‘의성허준축제’를 개최한다. 시인·온세 종교 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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