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의령군 호암 생가 풍수진단-
150년 넘은 고택 부자 기운 내뿜는 명소됐다
조부가 손수 지은 단아하고 기품 있는 전통 한옥
2년 전 개방 후 관광객 급증, 의령군에 효자 구실
호암 생가는 1851년에 지어졌다. 호암의 조부가 전통 한옥 양식으로 손수 건립했다. 그 후 몇 차례의 증·개축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생가 양 옆에는 이 집 못지않게 넓은 터와 고래 등 같은 규모를 자랑하는 한옥이 나란히 있다. 바로 호암의 둘째 할아버지와 셋째 할아버지의 집이다. 현재 이들 한옥은 공개되지 않고 있는데, 호암 생가와 같이 공개하는 방안을 놓고 후손들이 논의 중이라고 한다.
생가는 단아하면서도 웅장하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진중한 기품이 묻어나는 전통 한옥이다. 코가 빨갛도록 추운 날씨였지만 솟을대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니 본채 뒤편에 수문장처럼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든든한 암벽에서 반사되는 햇살이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듯 했다.
1861㎡의 너른 대지에 본채와 사랑채·대문채·창고·사주문으로 구성된 생가는 마치 주인장이 잠시 집을 비운 듯 온기가 남아 있는 모습으로 방문객들에게 다가온다.
안채에는 도자기와 한복·그릇 등 안주인의 성향을 나타내는 생필품들이 방마다 잘 진열되어 있고, 사랑채는 바깥주인의 인품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병풍 등 생활소품들이 정갈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추수철마다 쌀가마를 켜켜이 쌓아 두었을 사랑채 옆 곳간에는 농기구들이 잘 정리돼 있어 이 집이 한때 노비 30여 명을 거느린 부농이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입구와 안채 마당의 두 군데 우물은 정식으로 생가 개방을 하면서 수질검사도 마쳐 그 옛날처럼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마실 수도 있으나 안전 문제로 덮어놓았다. 아주 추운 날씨였지만 40대 중반의 아주머니 세 사람이 생가 경내를 둘러보고 있었다.
2년 전 생가 개방과 함께 관리를 맡아온 이무형 소장은 “관광 상품을 이용해 단체로 오시는 분들도 있고, 창업을 앞둔 사람이나 취업 준비생, 수험생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찾는 다”며 “새해는 호암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이곳을 찾는 사람이 더욱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호암 생가는 자굴 산 산줄기의 끝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최고 부자의 기(氣)를 받아 잘 살아 보자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자영업자·주부·신혼부부 등은 물론 기업인들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찾았다.
자굴산의 정기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생가 본채로 마루에 앉아 명상에 잠기면 기가 폭포처럼 백회(百會:머리 위 중앙의 경혈)로 쏟아져 들어온다고 한다.
빗장을 걸어 잠갔던 호암 생가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만든 주인공은 김채용 의령군수다. 김군수는 2006년 취임 후 조선시대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생가에서부터 인근의 호암 생가를 거쳐 임진왜란 승첩지인 정암 진을 잇는 역사적 유산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삼성과 줄기찬 협의 끝에 생가 개방을 성사시켰다.
지난해 이곳을 찾은 사람은 대략 8만여 명. 이런 방문객 숫자는 마땅한 관광자원이 빈약한 인구 3만여 명의 의령군으로서는 대단한 성과이자 그 자체가 뉴스였다. 호암 생가가 개방되면서 마을 분위기도 상당히 달라졌다. 찾아오는 사람이 몇 배로 늘어나면서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
의령군과 지역주민들은 공통의 희망이 있다. 이곳이 삼성의 모태인 만큼 그룹 차원에서 삼성과 관련된 시설을 짓는 등의 방식으로 지원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의령군과 호암 생가
의령군은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홍의장군 곽재우가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호국의병의 고장이다. 경상남도 중앙에 위치해 있고, 높고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특산물로 수박과 구아바·망개떡·소국밥· 한지가 유명하다. 인구는 3만 500여 명이다.
생가 풍수진단-
사단법인 대한풍수지리학회 이사장 강환웅 박사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 위치한 호암 생가는 지난 2007년 11월 호암 타계 20주기를 맞아 전면 개방됐다. 그 덕에 한적한 시골마을은 별안간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한국 최고 부자를 낳은 집안의 기운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호암 생가는 세간의 기대처럼 큰 부자의 기운을 품고 있는 것일까? 대한풍수지리학회 이사장(풍수지리학 박사)의 설명을 들어봤다. 김윤현 기자
증조부 묏자리도 명당
“전국에서 이만한 명당은 찾아볼 수가 없어요. 역대 대통령들의 생가 터도 다 조사해 봤지만 호암 생가에 비견할 곳은 없더군요. 거의 완전무결한 집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환웅 이사장은 호암 타계 직후인 1987년 12월에 이곳 생가를 처음 방문했다. 이후로도 후학들을 데리고 매년 연례행사처럼 다녀왔다. 그만큼 연구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는 한눈에 터가 좋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첫 방문 때 호암의 사촌동생을 만난 강 이사장은 그의 안내로 호암의 증조부 묏자리도 살펴봤다.
“호암 생가 터가 아주 좋았어요. 문득 그의 증조부 묏자리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들더군요. 그래서 호암 사촌동생과 함께 생가 뒷산 너머에 있는 증조부 묏자리로 가봤는데 그 터도 참 좋았습니다. 너무 좋아 감탄할 정도였지요.”
강 이사장은 호암 사촌동생에게서 생가의 유래도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호암의 증조부는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려 승려와 풍수가를 대동하고 의령 일대의 명당을 찾아다니다가 현재의 생가 일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생가 마을은 집 한 채 없을 정도로 아주 외진 산골이었다고.
호암재단 공식 자료에는 1851년 호암의 조부가 직접 생가를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호암은 이 집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고, 결혼 후에도 분가하기 전까지 살았다.
호암 생가는 어떤 점에서 명당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강환웅 이사장의 설명이다. “호암 생가는 뒤쪽에 자리잡은 주산(主山)과 앞쪽에 위치한 안산(案山)뿐 아니라 좌청룡과 우백호도 금산(金山)의 형국입니다. 산의 형태 중에는 금산이 가장 좋은데 대개는 암반으로 이뤄져 있어요. 또한 집터의 사방이 금산인 것을 최상으로 치는데, 호암 생가가 바로 사방이 금산인 경우지요.”
통상적으로 풍수지리학에서는 집터나 무덤, 도읍 등의 뒤쪽에 있는 산을 주산이라 일컫고, 앞쪽에 있는 산을 안산이라 이른다. 좌청룡과 우백호는 각각 터의 왼쪽과 오른쪽을 뜻한다.
헌데 호암 생가는 네 방면의 풍수지리가 모두 좋은 터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안산 너머에 강이 흐르면 더욱 금상첨화인데, 호암 생가가 딱 그런 경우다. 바로 낙동강 지류인 남강(南江)이 청룡과 백호를 멀리서 아우르면서 안산 저편으로 유장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풍수지리학에서 물은 곧 재산으로 본다고 한다. 게다가 금산은 부(富)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명당의 요건이다.
이 밖에도 호암 생가를 명당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더 있다고 한다. 안채 바로 옆쪽에서 집터를 감싸고 있는 듯한 웅장한 화강암 암반이 그것이다. 강 이사장은 “집터를 암반 위에 쓰면 무병장수하게 된다. 땅에서 나오는 지기(地氣)가 매우 왕성하기 때문에 그 기운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명당에 조상이 터전을 잡은 덕분에 호암과 그 집안이 번창하게 된 셈이다. 특히 호암 생가 주변의 산들은 낟가리(낟알이 붙어 있는 곡식 등을 그대로 쌓아 놓은 더미) 형상을 띠고 있는데, 이 역시 풍수지리적으로 재물이 붙는 터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다른 재벌그룹 창업자들의 생가는 어떨까? 그들도 나름대로 좋은 터에서 기운을 듬뿍 받지 않았을까? 공교롭게도 호암 생가가 위치한 의령군 인근 지역에도 유명한 재벌 창업주의 생가가 위치해 있다.
하지만 강 이사장은 호암 생가 집터가 다른 어떤 재벌보다 훨씬 낫다고 평가했다. 명당 중의 으뜸 명당이라는 것이다. 결국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한국 최고 재벌가를 이룬 호암은 그런 운을 타고 난 것이 아닐까 싶다.
호암 생가 마당으로 들어서다 보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표지석이 있다. 여기에는 호암 생가를 가리켜 ‘풍수지리에 따르면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이 되어 맺혀 있어, 지세가 융성하고 멀리 흐흐는 남강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재물이 쌓일 수밖에 없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호암 생가 마을에서 ‘풍수지리원’을 운영하는 김점석 원장(54)은 이곳이 왜 명당인가라는 질문에 “문자 그대로 좌청룡 우백호에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세를 갖춘 최고의 명당”이라고 말했다.
“기운이 생가 좌측에 있는 자굴산 쪽에서 돌아오면서 청룡을 끌고 오고, 바위 집터가 활처럼 휘면서 기를 머무르게 해줍니다. 풍수 형국론으로 보면 이곳은 잠룡희주(潛龍戲珠:용이 여의주를 갖고 노는 모양새)형이어서 배부분이 편하고 그래서 좋은 기가 가득합니다.”
김 원장은 또 “흔히 이곳의 기가 세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은 아니고 기운이 크고 푸근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