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국내 유명 법대와 미국의 명문 법대를 졸업한 분으로 한때는 청와대에 있었고 군사정권 때는 모 단체의 총재를 역임하는 등 그야말로 잘나가던 정치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내심 장관직 이상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어찌 된 일인지 될 듯 될 듯하면서도 그 이상의 정계 진출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랜 궁리 끝에 자신의 이러한 불운이(?) 부모님 묘 자리 탓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밖에서 보았을 때 그분은 엄청 성공한 분이었는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많이 배운 사람도 조상 탓하는 것은 마찬가지더군요.
그때부터 그는 미국대학 도서관에 있는 풍수 서적과 한국에서 출판된 모든 풍수 책을 구입해서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당시 국내에서 이름 높던 풍수선생 3분을 엄선해 그들의 강좌와 답사를 쫓아다니며 이론과 현장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자신의 말로는 마치 미국 법대를 졸업할 때처럼 각고의 노력을 했다고 하니 그 열정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기를 5년 마침내 풍수의 오묘한 이치를 터득하여 세명의 선생들을 능가하는 최고의 실력자가 되었답니다. 물론 최고의 실력자라는 것은 자기 혼자만의 생각일 뿐입니다.
이때부터(1990년 대 초반) 이분의 파란만장한 풍수 이력이 시작됩니다.
가장 먼저 그 시절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손석우 선생에게 땅을 소개받아 자신의 부모님 묘를 이장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현재 손석우 선생 묘가 있는 가야산 땅을 살까도 생각했지만, 자신이 보기에 탐탁치 않아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대신 자신이 이제껏 공부한 안목으로 보았을 때 최고의 명당을 자신 있게 선택합니다. 물론 장관 이상 가는 정승반열의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모든 것이 이루어지리라 잔뜩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장한지 2년이 지나도록 고대하던 입각이나 공천 소식이 없자 차츰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묘 자리를 다시금 살펴보니 “아차” 자신이 잘못 보았더랍니다.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몇 년 지나자 보이더랍니다.
그러나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므로 누구 탓할 것도 없습니다.
그나마 일찍 발견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번에는 지방에서 명성이 높은 풍수선생을 찾아가 이번에야말로 금시발복의 틀림없는 명당을 쓰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2년을 기다렸으나 기다리던 소식은 끝내 없었습니다.
두 번을 실패하고 이미 60을 넘긴 나이이기에 더욱 초조해집니다.
그러자 이제까지 공부한 것에 심한 회의를 느끼게 되는데, 급기야 여기저기 다니면서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이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기를 10년 동안 총 7회였다고 합니다.
이분은 명당을 쓰기만 하면 하루아침에 만사형통하는 줄 알고 있었나 봅니다. 사실 일곱번 중에는 어쩌면 진짜 좋은 명당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명당을 몰라보고 너무 빨리 이장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의 형제와 가족들도 처음 두세 번은 함께 참여하여 부모님의 체백을 위로했으나 이분이 워낙 독선적이고 변덕이 죽 끓듯 하다 보니 더 이상의 참석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형제들은 어렴풋이 몇 년 전에는 부모님 묘가 충청도에 있었는데, 작년에는 경기도로 옮겼으며, 또 올해는 경상도 어디로 갔다는 식의 소문만 들릴 뿐입니다.
그렇다 보니 부모님 묘에 성묘를 못간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그럴 무렵 정치인은 우연한 기회에 관룡자에 푹 빠지게 됩니다.
관룡자 아시지요?
엘로드 비슷하게 생긴 것으로 손에 들고 다니면 氣가 좋은 곳에서는 저절로 팽글팽글 돈다는 것 말입니다. 다른 말로는 명당탐지기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이분은 기운을 감지하는 능력도 천부적으로 타고났는지,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도 관룡자가 핑핑 돈다고 합니다. 차를 세우고 관룡자가 인도하는 데로 올라가 보면 틀림없는 명당이 있다는 겁니다. 그와 같은 방법으로 마침내 충청도 땅에서 전설적인 명당 자미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아마 당신만의 자미원이겠지만·····
아무튼 그곳으로 부모님의 묘소를 옮겼다는 군요. 이번이 8번째입니다. 그러나 자미원이 종착점이 될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요.
참고로 자미원은 천하제일의 음택 명당으로 전 세계를 통일하고 다스리는 성인이 나올 땅이라고 합니다.
이러는 사이 정치인 나이는 어느덧 80이 훨씬 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분이 공직에 발탁되었다는 소식은 듣지를 못했습니다. 다만 오래 전 변호사 사무실을 서초동에서 서울 변두리로 옮겼다고 하는 소문을 들은 적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소식은 정계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학벌과 화려한 이력을 바탕으로 묘 자리를 직접 써주기도 한다는군요. 물론 명당은 자신이 직접 관룡자로 찾은 땅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한 가지 짚고 가겠습니다.
희한하게도 이런 것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 시점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긴 것처럼 행동한다는 점입니다. 그분들은 뜬금없이 “이곳이 기가 뭉친 곳이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확신에 찬 눈빛과 표정을 지으면서 말입니다.
이분은 법학을 전공하시어 논리적이고 사실적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착각과 망상에 빠져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이제는 정치의 꿈을 포기하고 풍수로 나선 모양입니다. 학벌로 따지면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일등 가는 풍수일 것입니다.
한편 의뢰인들 입장에서는 변호사 출신 풍수라고 하니까 더욱 믿음이 가는 모양입니다. 사람 팔자 참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변호사가 묘를 써준 정치인이 재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문득 세상은 요지경이란 노래 가사가 생각납니다.
나의 덕은 닦지 않고 안되면 조상 탓이라 하여 부모님 유골을 아침에 옮기고 저녁에 또 옮기니 고치면 고칠수록 더욱 그르칠 것이라 했습니다. (吾德之不修而徒責効於祖宗, 父母之遺骨朝移夕改愈更愈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