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에는 지령인걸이란 말이 있다. 땅의 기운이 인물을 키운다는 말이다. 영양 일월산(1,219m)은 웅장한 자태인데, 산의 모습으로 보아 지역의 사람들 또한 성격이 강하고 기개가 높음을 짐작할 수 있다.
풍수는 환경결정론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산이 크면 사람의 배포가 크고, 산이 작으면 사람이 옹졸하고, 산이 살찌면 사람이 부유하고, 산이 수척하면 사람이 가난하고, 산이 감싸주면 사람이 모이고, 산이 등돌리면 사람도 떠나고, 산이 밝으면 사람이 지혜롭고, 산이 어두우면 사람이 미련하다고 했다.
영양 일월산 밑에는 한양조씨들 집성촌 주실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조선중기 때 조광조의 후손이 사화를 피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마을은 5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많은 인물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가장 최근에는 외교부 장군 조태열도 이곳 출신이다. 조태열의 증조할아버지(조인석)는 독립유공자이고, 할아버지는 6.25때 북한으로 납북된 조헌영이다. 조헌영은 한의사 출신으로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을 지냈다. 6.25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동의보감을 번역하는 등 학자로서 큰 이름을 떨쳤다. 현재 북한 한의학계의 대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조태열 외교부장관의 부친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이다. 조지훈은 일제강점기 때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으며, 해방 후에는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참고로 청록파(靑鹿派) 시인은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세 사람을 말한다. 청록파라는 명칭은 1946년 청록집이라는 시집을 세사람이 함께 발간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세 사람이 길을 걸으면 조지훈이 항상 맨 앞에 걷고 그 뒤로 박두진과 박목월이 걸었다고 한다. 걷는 모습을 보면 조지훈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걷고, 박두진은 정면을 바라보고 걸으며, 박목월은 땅을 바라보며 걸었다. 걷는 모습처럼 세 사람의 성격과 시의 세계가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조지훈의 대표적인 시는 '승무'가 있으며, 지조론(志操論) 또한 유명하다. 지조란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아니하고 끝까지 지켜 나가는 꿋꿋한 의지 또는 기개를 말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 없다. 자기의 명리(名利)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하루아침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 있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 곤고(困苦)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안심하고 그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요즈음 정지인들의 새털같이 가벼운 언행에 많은 국민이 실망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추상같은 지조론을 들려주고 싶다.
조지훈 일가는 주실마을 호은종택에서 태어났다. 입향조 호은(壺隱) 조전(趙佺, 1576~1632)이 이곳에 들어와 뒤편의 매방산에서 매를 날렸는데, 매가 앉은 자리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호은종택 정면에는 삼각형의 문필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집의 좌향은 남서향인데, 남향을 고집하지 않고 문필봉을 보고 의도적으로 지었다. 그런 까닭에 호은종택과 주실마을에서는 많은 학자와 인물이 배출되어 박사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문필봉의 형태가 날카롭다는 것인데, 조지훈의 추상같은 필설은 문필봉을 그대로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문필봉이라도 넉넉한 모습이었다면 좀 더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문필봉은 주실마을 전체에 영향을 끼쳐 이곳 출신 학자들은 성품이 대쪽같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사람은 산을 닮게 마련이다.
주실마을 한가운데는 장군천이 흐른다. 멀리 일원산에서 발원한 장군천은 무심하게 흐르다가 마을에 이르러 불현듯 크게 꿈틀거리고 있다. 풍수에서 물길은 재화로 경제력과 경쟁력을 뜻한다고 했는데, 물길이 가장 많이 굽이치는 곳을 정하면 실패하지 않는 법이다. 물길이 굽이치는 것은 물길이 그곳에 머무르고자 하는 징표이므로 재복이 넉넉한 곳이 다. 그러므로 풍수를 모를 때는 물이 가장 크게 꿈틀거리는 곳을 정하면 된다.
주실마을을 풍요롭게 품어준 하천은 마을을 지나자마자 다시 곧고 길게 흐른다. 명필 문장가의 명당을 만든 장군천이 자신의 소임을 마치고 무정하게 흐르자 하천을 따라 바람이 불게 된다. 이점을 비보하고자 마을에서는 천변에 숲을 조성했다. 빽빽한 원시림 같은 이곳은 하류에서 부는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이다. 일명 시인의 숲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2008년에는 산림청에서 주최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었다.
주실마을의 한양조씨들은 3不借로 유명하다. 세 가지를 남에게 빌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첫째, 재물을 빌리지 않는다.(財不借)
어느 정도의 재물이 있어야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 앞에 있는 논밭 50마지기는 그 자존심의 터전이었다.
둘째, 문장을 빌리지 않는다.(文不借)
학문을 중시하는 가풍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으며, 그 전통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셋째, 인물을 빌리지 않는다.(人不借)
양자를 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자를 들이지 않고 적통으로 대를 이어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주실마을 종가집은 그것을 실천하고 있으니 특별한 비책이 있는 모양이다.
근래에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독서 열풍이 불고 있는데, 당신이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다면 주실마을을 둘러보면서 문필봉의 기운을 받을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