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풍수를 공부하다 보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게 된다. 사주팔자에 역마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다니는 것을 보면 풍수인의 숙명인가 보다. 특히 묘지에 관심이 많아 이름난 묘는 거의 다녀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고 아름다운 묘를 고르라면 주저 없이 진주강씨 강회백 묘를 꼽는다.
강회백(1357-1402)은 고려말 조선 초의 인물로 이조판서와 대사헌 등을 지냈다.
묘는 연천의 민통선 내에 있어 민간인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지만, 신분증을 제출하면 누구라도 답사할 수 있다.
대중교통은 없지만, 그로 인해 청정지역을 유지하는 곳이다.
이곳 묘는 무학대사가 잡아준 곳이라 한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도읍을 옮기기 위해 개성에서 이곳을 지나다 찾은 곳으로 강회백에게 자리를 주었다고 한다.
이 묘는 인근 지역 사람들에게는 강장군 묘로 불리기도 한다. 강영훈 국무총리가 장군(중장) 시절 이곳을 자주 찾아와 묘지 손질을 했기 때문인데, 후손으로서 선조 묘에 대한 공경심의 발로였다.
이곳 묘를 멀리서 보면 평지에 불쑥 솟은 것이 마치 신라시대 왕릉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라의 왕릉은 평지에 돌과 흙을 산처럼 쌓은 인공적인 봉분이지만, 이곳은 전체가 작은 산이고 묘는 산의 정상에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마치 여인의 젖가슴 중 유두에 해당하는 모습이다.
풍수에서는 혈의 모습을 크게 와·겸·유·돌 네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와혈은 제비집과 같은 지형으로 오목한 소쿠리처럼 생긴 곳이고,
겸혈은 엄지와 검지손가락 사이 합곡처에 생기는 혈이고,
유혈은 여인의 젖가슴처럼 생긴 모습이고,
돌혈은 평지에 불쑥 솟은 형태로 강회백 묘와 같은 것을 말한다.
와겸유돌 형태 중 가장 많은 것이 유혈로 조선왕릉은 거의 모두가 유혈의 형태를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겸혈과 돌혈은 많지 않은 편이다.
이곳 묘는 뒤편의 주산에서부터 산줄기(용맥)가 탯줄처럼 이어지는데, 상하좌우 꿈틀거림이 매우 역동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과 같은 경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주산부터 묘소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박진감이 있고 군더더기 없는 최상의 상태다. 이런 기이한 모습 때문에 풍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인데, 누구라도 이곳에 오면 감탄을 한다.
이러한 모습의 돌혈은 獨山과 흡사한데, 독산은 주산에서부터 이어진 산줄기(용맥)가 없이 평지에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이런 곳은 산의 기운이 없기 때문에 묘를 쓰면 안 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사람들은 이런 곳을 선호했는데, 평지에 솟아서 전망이 탁월하고 주변에 비해 우월한 위치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도 있는 집안들이 이런 곳에 묘를 많이 썼으나 그 후 이런저런 이유로 몰락하여 지금은 묘의 관리조차 부실한 것을 볼 수 있다. 넓은 평지에서 바람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에 풍파가 많은 곳이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묘는 넓은 들판에 꽃송이처럼 자리한 까닭에 연화부수형이라 부른다. 그런데 몇 해 전 연천의 군남댐이 생기면서 여름 장마철이면 묘소 앞까지 물이 차는데, 실제로 연꽃 모양처럼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이곳은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멧돼지, 고라니 등의 야생동물 출현이 많은 곳이다. 그러므로 답사 시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그 대신 민간인통제지역 만의 매력도 있어 청정한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이곳과 가까운 곳에는 미수 허목선생 묘도 있고 해방 후에 국풍으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청오 지창룡 선생 묘도 있다.
이 지역은 교통체증이 전혀 없어서 여유롭게 답사하기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