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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반개형의 명당 포은 정몽주 생가

최고관리자 0 1,561 2021.07.0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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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71[96] 

 

모란반개형의 명당 포은 정몽주 생가

 

강상구박사

대한풍수지리학회 부회장

영남대학교 환경보건대학원 풍수지리 교수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은 고려 말 절의를 지킨 유학자로 야은 길재 목은 이색과 함께 삼은의 한 사람으로서 경북 영천의 우항리에서 영일정씨 운관과 영천이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선 3대왕 이방원의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츩이 얽어진들 긔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하여가에 대한 답가로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고 읊은 단심가가 잘 알려져 있다. 선생은 사후 개성 풍덕에 초장으로 모셨다가 고향 영천으로 이장하기 위해서 운구를 하는 도중 면례행렬이 용인 능원리를 지나는데 앞에 세웠던 명정이 바람에 날아가 현재 묘소의 위치에 떨어져 그곳에 안장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선생의 묘비에는 고려시대의 벼슬만을 쓰고 조선의 시호를 쓰지 않아 두 왕조를 섬기지 않은 유지를 받들었다.

경북 영천시 임고면 효자로 342에 있는 선생의 생가를 들렀다. 해설사 김선영씨에 의하면 선생의 어릴적 이름은 몽란(夢蘭)으로 영천이씨가 태몽으로 난초 꿈을 꾸었다하여 지어졌고, 몽룡(夢龍)은 어머니가 낮잠을 자는 꿈에 뜰 앞에 있는 배나무에 흑룡 한 마리가 휘감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일어나 가보니 몽란이 나무에 올라가 있었다 하여 몽룡이 되었다 한다. 몽주는 주나라를 세우는 데 절대적 공헌을 한 주공의 꿈을 아버지가 꾸고 바꾸어진 이름이다.’

생가를 들어서는 대문 위에는 정도준의 낙관이 새겨진 聖臨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성림문은 성인이 태어난 집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조선의 성리학을 발전시킨 퇴계 이황선생의 생가 노송정 종택의 정문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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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터는 금호강 상류인 임고천과 자호천 물을 자양분으로하는 여러 겹의 꽃잎으로 싸여진 모란반개형의 명당으로 기운이 충천하다. 터 입지는 마치 어머님 자궁 속에 있는 듯 좌우의 낮고 두터운 산으로 둘러싸여 온화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꽃 중에 왕이라고 불리는 모란꽃은 크고 화려하여 위엄과 품위를 갖추고 있어 일반적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화목을 상징한다. 모란꽃이 나타내는 꽃 중의 왕 기운에는 자기분야에서 최고 또는 지존이라는 풍수적의미를 품고 있다. 그래서 궁중에서나 벼슬아치 종교적 상징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정몽주 선생의 생가에서 보이는 한일자 형 산은 문무를 겸비한 기운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 풍수정설이며 이와 어우러진 모란꽃의 기상은 포은 정몽주 선생의 생애와 연관을 지어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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