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이론

혈(穴)에 있어서 시체의 변화와 추효(追孝)

최고관리자 0 3,787 2016.11.28 15:15

제6장    風水地理의 原論   
 第2節 風水의 法術과 生氣感應
Ⅲ. 占穴法
 
  5. 혈(穴)에 있어서 시체의 변화와 추효(追孝)
 
앞에서 혈처의 꺼리는 것을 대체로 열거했다. 여기에 하나 주의를 요하는 것은  기피해야 할 것 중 최후에 들었던 어둡고 찬 땅, 즉 양시(養尸)땅에 대해서이다.  백년이나 시체가 변하지 않는 어둡고 찬 땅을 기피하는 이유는 결국 풍수의 무덤에 대한 관념, 부모의 시체에 관한 생각을 명백히 설명하는 것이다. 즉 부모장례에 대한 근본관념을 아는 일이 될 것이다.그 이유의 하나는 전술한 바와 같이, 장사는 생기가 편승하는 것을 주안으로 하기 때문에 양시의 땅은 생기의 맥이 없는 땅이므로 이것을 기피한다. 그런데 이것을 기피하는 이유는 이러한 땅에 묻으면 시체의 살이 빨리 부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부터 존속 부모를 매장하는 데는 관이 두껍지 않은 것을 쓰지만 관나무가 썩지 않는 것을  골라 또한 관속에 부패를 방지하는 각종의 약을 채우기도 했다. 이것은 무릇 시체가  속히 부패하는 것을 막고, 오래 구체(舊體)를 유지하도록 힘썼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부모의 시체를 매장하는 데 백년이나 옛모습을 유지시키는 양시의 땅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길혈(吉穴)이 아니면 안될 것이다. 그런데 풍수에서는 두꺼운 관을 쓰고 냉혈(冷穴)을 버리고 오히려 시체가 빨리 부패하는 따뜻한 땅을 구한다. 따라서 풍수는 사람의 자식으로서 부모의 사후를 편하게 하는 정을 끊고 소위 효의 본뜻을 망각하고 있는 것같이 보여진다. 이 점에 대해서 서(徐)씨는 다음과 같이 변호하고 있다.어떤 사람이 나를 힐책하여 말하기를 자식이 땅을 구하는 것은 부모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즉 백년 동안 뭉개지지 않고 얼굴 모습이 살아 있는 것 같은 양시의 땅 외     에 어떤 길(吉)이 이것에 필적하겠는가. 그런데도 이곳을 버리고 부패하고 썩기 쉬운     혈을 원해서, 부모의 몸을 빨리 부패하게 함으로써 부귀가 살아 있는 자에게 있도록      원하는 것이 어찌 효자의 마음 이겠는가. 이에 답하기를, 그것은 이를 말이 안된다.      만물은 화귀(化歸)한다. 어느 것이고 불화(不化)하는 것은 없다. 그 양시가 변하지 않    음은 그늘지고 대단히 찬 땅으로, 북쪽 사람이 얼음을 저장함이 이와 같다. 옛사람이     왕비(妃)를 염할 때 수은을 시체 속에 넣으면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다. 이 수은은 대단    히 차서 시체를 보존해도 변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지금 양시의 땅에서 냉기가 시체에    침범하고, 시체를 변하지 않게 하려 해도 영혼이 편하지 않은데, 어찌 사람의 자식으로    부모를 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또한 감응이 산 사람에게 미치어 자손을 못    낳게 하거나, 혹은 생겨나도 자라지 않아 점차 대를 끊기에 이른다. 또한 사람의 자식    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장서(藏書)에서 고해득기(枯該得氣)라    하는 득기를 지맥 충화의 생기로 해서 원음(原陰)의 냉기가 없어지게 된다. 생기를 얻    으면 따뜻하고, 따뜻하면 부패하기 쉬워 뼈가 오래 존속한다. 유해도 역시 이것에 의해    사속번창(嗣續繁昌), 제사불체(祭祀不替)하니 큰 효도가 실로 여기에 있다 할 수 있다. 풍수가 양시(養尸) 땅을 꺼리고 살이 빨리 부패하는 혈을 원하는 것은 부모의 몸을 땅    에 돌려 보냄으로써 그 자손에 음덕이 되고, 자손이 번창하여 그 자제가 영속됨으로써    부모에게 효도가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모의 시체가 백년 옛몸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해도 제사 지낼 자손이 없다면 결코 효도라 할 수 없다. 제사를 영원하게 계속할 수 없    어서는 효도가 안된다. 영원한 제사를 바란다면, 자손의 번영을 바라지 않으면 안된다. 자손의 번영은 부모의 본 형체가 생기에 감응할 때 비로소 바랄수 있다. 그런데도 시체의 옛얼굴 모습이 살아 있는 것 같다면 그 해골은 생기를 받을 수가 없다. 무릇 자손과    부모의 죽음과의 관계에 의하면 부모의 정기는 자손에게 있고 부모의 정기는 뼈이다.     즉 자손이 받는 것은 부모일신(一身)의 정기인 뼈이지, 살이나 가죽이 아니다. 따라서 생기의 영향을 빨리 받아서, 제사가 완전히 영구히 행해지도록 자손의 번성을 구한다면, 기세 좋게 그 살이 빨리 부패되어 생기가 직접 뼈에 감응하도록 해야만 한다.뼈가 지기(地氣)를 받음으로 해서 비로소 자손의 번영을 바랄 수 있다고 하는 관념은, 서(徐)씨의 창의가 아니다. 그것은『청오경(靑烏經)』과『금낭경(錦囊經)』에 서도 명백히 말하고 있다. 즉 <百年幻化, 離形歸眞, 精神人門, 骨該返根, 吉氣感應,  異福及人> 이라는『청오경』의 골해감응설(骨該感應說)이나 <本該得氣. 遺體受蔭>이라는『금낭경』의 본해득기설 (本該得氣說)과 같은 것은 다름 아닌 모두 이 관념을 말했던 것이다. 좀더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장사는 해골만을 묻는 것으로서, 사람이 사망하면 草葬이라고 하는 나무 위, 풀 위, 또는 땅 위에 방치해서, 그 피부가 부패하는 것을 기다려 해골만을 거두어 땅 속에 묻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풍습의 이유를 논증하기란 쉽지 않지만, 아마 원시사회에서는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경우를 두려워하여 산야에 버렸던 것인데, 이 시체가 시일을 경과함에 따라서 그 피부는 부패하여도 그 해골은 쉽사리 썩지 않았으므로,    경외의 대상물이 되어 해골을 영구히 산 사람의 시야로부터 제거하기 위해서, 흙 속에    묻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뼈가 사람의 정령, 신체 중 가장 불멸의 근본적인 정령이라고 알고, 동시에 이 뼈가 산 사람에게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마을에서 떨어진 산야에 내버리거나, 화장하러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을 달리해서, 죽은자의 영혼이 따라오는 것을 막듯이, 옛날 송사(送死)의 풍습은 시체를 정령시하여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였던 것이다. 또한 옛날부터 인체의 각 부분은 각기 정령이 있다고 믿어, 머리카락 하나라도 손톱 한 조각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믿었고, 가장 부패 안되는 해골이 가장 강고한 정령이며 가장 두려운 것으로 산 사람에 대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령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이처럼 해골이 산 사람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정령이라는 정령 관념에 의하면 사람의 해골은 인체를 형성하는 생기있는 정기로서, 여기에다 사람은 부모의 정기를 받아서 출생한다는 음양의 정기관념이 결합되면 여기서 부모의 해골은 자손과 가장 교섭이 있는 것이 되며, 부모의 해골의 길흉선악은 즉시 그 자손에게 영향을 미치고, 부모의 해골의 음양의 생기에 순화하면 그 발전체인 자손도 역시 감응해서 부귀번영을 얻고, 이에 반해서 부모의 해골이 생기에 넘친다든가, 또는 쉽게 부패하는 경우에는 그 자손은 쇠퇴하고 후사가 단절됨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자연스런 추리일 것이다. 때문에 풍수에서는 부패는 빠른 것을 원하지만, 뼈가 썩는 것은 <不蓄之穴, 是謂腐骨, 氣爲可畏, 可不愼也> (청오경)라고 크게 꺼리는 것이다.요컨대 풍수에서는 혈이 따뜻해서 시체가 들어가면 그 부패가 빠르고, 여기에 융주(融注)해서 순화하는 생기를 즉시 해골로 받아, 이 생기에 넘치는 해골의 감응에 따라 자손이 번영을 이루고, 자손의 번영에 따라서 부모 선조의 제사가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효도의 극치이다. 따라서 효를 완전히 수행하려고 하면 마땅히 길지를 찾아서 부모의 해골로 하여금 쉽게 생기에 넘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다름 아닌 풍수의 본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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