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이론

풍수사상의 기원

최고관리자 0 3,863 2016.11.28 14:57

제2장 풍수지리의 기초 이론
 
 제1절 풍수사상의 기원
 
1.우리나라

(1) 풍수설의 발생설
우리나라는 자체발생설과 고대 중국에서의 유입설이라는 두 가지가 있으나, 자체발생설이 유력하다.
첫째, 한반도 내에서 단군신화에 보여지는 풍수적 사상과 내용, 둘째, 백제 시조인 온조왕과 고구려의 유리왕이 도읍지로 정할 때 산세를 살피고 난 후에 그 위치로 선정했다는 과정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풍수지리 기원설과 상관없이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고대 인류의 생성 과정부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풍수사상이 자생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야생하는 짐승도 잠자는 자리와 번식하는 자리는 명당중 명당인 것이다. 하물며 인류의 시조인 고대인들의 토굴과 고인돌이 있는 곳은 최상의 명당임을 누구든 부인 못할 것이다. 따라서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설화 이전에 이미 우리나라는 자연환경에 맞는 풍수사상이 사실상 도입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2) 고인돌에서 시작된 한국의 풍수지리
3000˜5000년 전에 세워진 고인돌은 고대인의 무덤으로,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그 형태를 찾아보기 드문 매우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고인돌의 입지를 분석해보면 대부분 배산임수 배치를 이루고 있어서 그 당시에도 이미 풍수지리이론을  적용했음을 알 수 있다.
고인돌은 땅에 묻은 죽은 사람의 시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구조는 벽체를  이루는 받침돌과 위에 올라가 있는 덮개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쪽과 북쪽 지역에 따라 모양에 약간 차이가 있지만 거대한 석재를 덮개로 사용한 점에서는 같다. 덮개석 위 부분은 매우 평탄해서 사람이 올라가 앉을 수 있는 모양이다.
죽은 사람의 집인 고인돌과 산 사람 집인 초가집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의미적 공통점 외에 형태도 매우 비슷해서, 고인돌이 한국 고대건축의 원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고인돌 덮개석이 받침석보다 커서 중압감을 갖게 하듯이, 초가지붕 역시 벽체 보다 훨씬 넓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고인돌이라고 하면 보통 죽은 사람의 시신을 보호하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인돌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하늘나라로 보내는  이별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왕과 같은 집권자가 죽을 때가 되면 미리 만들어  놓은 평탄하고 넓은 고인돌 덮개석 위에 편안하게 모셔져 죽음을 기다렸다는 사실에서  짐작 할 수 있다.  고인돌 위에서 살아있을 동안 왕은 여러사람의 시중을 받았고, 숨이 끊어지면 영혼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도록 산 자들이 명복을 빌었다. 영혼이 완전히 빠져나가면 산 자들    은 시신을 고인돌 아래 묻고 흙과 돌로 보호했다. 이때 시신을 안전히 보호하기 위해서    거대한 돌을 사용하되 받침돌 간격을 좁혔다.
  지금도 사람이 죽으면 후손이나 친지 가운데 한 사람이 지붕 위로 올라가 고인이 입었던 옷을 하늘 높이 휘두르며 하늘에 고인의 죽음을 알리는 관습이 있다. 이는 고인돌  덮개석에서 하늘로 영혼을 올려보내던 의식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붕은 인간의 영혼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배웅의 공간이며,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만남의 공간이다.    
 

2.중국
 
(1) 신화시대의 풍수사상
① 반고(盤古)의 천지(天地) 창조 신화(神話)
서양(西洋)에서는 기독교가 여호와의 천지창조로 이세상이 창조되었다고 하고 중국에서는 반고(盤古)의 天地 창조 신화로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다. 이는 天地가 아직 붙어 있다고 믿는 시절 우주는 한덩어리의 달걀처럼 큰모양의 둥근 형태로 되었는데 반고(盤古)는 바로 이큰달걀 속에서 잉태하게 되었다. 반고(盤古)는 1만8천년간 잠에서 깨어 달걀을 깨고 나와보니 맑은 공기는 하늘이 되고 무겁고 탁한 기운은 가라앉아 땅이 되었다는 神話이다.
뒤에 반고가 죽어갈 때 입에서 새어나온 숨길은 바람과 구름이 되었고 목소리는 우릉거리는 천둥소리로 변했고 왼쪽 눈은 태양, 오른쪽 눈은 달로 변했고, 손과 발, 그리고 몸은 대지와 산이 되었고 피는 강물이 되었고 핏줄은 길이 되었다. 살은 밭이 되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하늘의 별로, 피부와 털은 화초와 나무로 뼈와 골수 등은 금속과 단단한 돌로 변했다고 한다. 이와같은 신화는 믿을 수 없는 신화이지만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ꡒ늘 반고가 천지 를 개벽한 때로부터ꡓ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삼황시대(三皇時代)를 저 버리고 오제시대(五帝時代)부터 歷史를 인정하는 記述하고 있다.

② 삼황오제시대(三皇五帝時代)
     ● BC 3000년전 황화유역(黃河流域)의 부족국가의 우두머리인 복회(伏義) 때에 중국 황하(黃河)에서 신비스럽게 생긴 용마(龍馬)가 나타났는데, 그 馬의 배복모(背腹毛)에 다음 그림과 같이 생긴 이상한 모양의 점(點)이 있어 이를 신비롭게 생각하고 유심히 관찰해 본 결과, 바로 여기에서부터 우주의 原理를 발견하고 八卦을 얻었다고 전한다.
    ● 하도원리(河圖原理)
     
   
③ 은주시대(殷周時代)
     1) 은왕조(殷王朝)
은왕조(殷王朝)의 시조는 설이다. 은왕조(殷王朝)의 政權은 왕과 귀족들로 구성된 정권이였다. 이때 정권(政權)의 체제가 잡히기 시작하여 이때 무(巫) 사(史) 복(卜)등  종교업무를 관장하는 관직도 있어 종교적인 관습이 제도화되어 일정한 귀족의 가족에 의하여 세습되었다. 여기에 무, 복을 중심으로 풍수지리 사상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2) 주왕조(周王朝)
주(周)의 시조는 요순시대 농업담당 장관이였든 후직(后稷)으로 그의 성은 희(姬), 이름은 기(棄)이다.
주왕조는 시조 후직의 11대째인 고공단보(古公亶保)에 기산(岐山)으로 도읍을  옮겨 나라 이름을 주(周)라고 하고 제후국으로서의 기틀을 갖추었다. 고공단보의 손자인 창(昌)을 낳았는데 고공단보는 장차 왕위를 손자 창에게 왕위를 물러주고저 하였으나 주나라는 장차 원칙으로 인하여 불가능 하였다.
결국 아버지 형제의 양보로 창이 결국 왕위에 올라 선덕을 펼쳐 국력이 날로 발전하였다. 창이 대업을 이룩하지 못하고 죽자 그아들 발(發)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무왕(武王)이다. 무왕은 죽은 아버지를 문왕(文王)이라 추존하고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을 사부로 맞아 드렸다. 이때 문왕(文王)이 작성(作成)한 낙서원리가 문왕팔괘(文王八卦)라 한다.
신비롭게 생긴 신구(神龜)가 나타났는데, 자세히 그의 기북등을 살펴보니 배갑(背甲)에는 절획문자(折劃文字)와 비슷한 점으로 다음 그림과 같이 그러져 있어 이를 본딴 것이 낙서(洛書)라고 한다.
          
  
(2) 중국은 방대한 국토에 여러 민족이 혼합하여 살고 있다. 이 역시 고대 민족이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생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풍수사상의 문헌의 전래는  춘추전국시대의 노자(老子)와 장자(莊子) 즉 노장사상의 기록이 전래되어 이때 이미   학문적으로 정립되었다고 본다. 
중국의 역사란 나라 자체가 광활한 대륙에 자리한 탓에 대륙을 통합하고 지배하려는 호족세력들과 군주들의 권력쟁탈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세력다툼의 와중에서 각 시대를 지배할 제왕들은 천년불패지지(千年不敗之地)의 자리에 도읍지를 정하기 위해 완벽한 진형(陣型)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기문둔  갑술(奇門遁甲術), 방술(方術), 병법(兵法)등의 체계가 형성되어 이로 인해 풍수에  관한 기초 이론은 역사에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최초의 풍수경전인 ≪청오경(靑烏經)≫이 나오면서 학문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다.
 
 

3.서양의 풍수역사
 
  ①이집트의 피라미드는 5000년전 고대인이 대표적 음택 묘지로서 긴세월 동안 손상이 없는 명당중의 명당이다.
  ②로마교황청의 성전(聖殿)은 양택명당의 극치를 이룬 천하의 명당이다.
  ③이와 같이 풍수지리 사상은 동양에 의하여 전래된 것이 아니고 각 지역의 고대인들이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살기 위해 자연 발생적인 풍수사상으로 점차 그 연구가 발전하여 이젠 세계적으로 각광 받는 학문으로 발전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선진국에서 실생활의 지침서로 적용되고 미국 뉴욕시 맨해턴의 대한항공 사무실 건너편 한 서점에 영문으로 쓰여진 풍수지리(FENG SHUI) 책이 단일 제목으로 가장 많은  90여권이 전시되어 있으며, 미국에서는 풍수사들의 상담료가 30분에 미화 3천불이라는 고가의 상담료와 1일 풍수지리 지도료가 미화 5만불이라는 고액의 수수료로써 단연 고급직업에 속하는 각광 받는 직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Category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